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 소설가 김별아가 백두대간에서 들려준 인생론

효준선생 2012. 7. 4. 00:48

 

 

 

 

 

내가 나이를 먹었다고 느끼는 것은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이나 무심히 들춘 머릿속에서 흰머리를 발견할 때가 아니다.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다 안쓰럽고 애틋해 보이고 그들에게 한없이 미안해질 때다. (p118)


산은 경외롭다. 산 아래에서 사는 미물들에겐 산허리에 걸린 구름만 봐도 현기증이 나고 구름을 넘나드는 산신령이라도 만날까 두려워 산에 오르는 걸 무서워 한다. 누군가는 저 곳에 산이 있기에 산을 오른다는 우문현답을 하기도 하지만, 문명의 이기인 탈 것을 이용해 산 중턱에 떨어뜨려 놓아도 걸을 기운도 없을 듯 하다. 바로 내 이야기다. 산은 두렵다. 한발만 잘 못 디디면 천길 낭떠러지에 죽은 몸뚱아리조차 찾지 못하게 할 만큼. 밤이 되면 천지 사방을 구분하지 못할 흑막의 장애가 눈앞에 펼쳐진다. 그래서 산이 멀게 보인다.


10년도 더 된 오래전, 친구와 버스를 타고 지리산 중턱에 까지 올랐다. 그리고 걷기 시작했다. 그 어떤 안전장비도 없이 운동화에 작은 배낭 하나 맨 채였다. 능선을 따라 굴곡없는 길을 걸었다. 오가는 사람들이 우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보면서 스쳐 지나갔다. 조금씩 인적이 드물어졌고, 이젠 내려가야겠다고 생각할 무렵 조금씩 비가 비쳤다. 발걸음은 빨라졌다. 마치 빗줄기가 우리 등 뒤를 따라오는 것 같았다. 구례에서 시작해 하동땅 접경으로 내려온, 작은 지도로 보면 손가락 한 마디 거리도 안되지만, 그날의 공포는 대단했다. 그 이후로 다시는 산에 오르지 않았다.


백두대간, 얼마나 웅위로운 단어인가. 일본인은, 중국인은 결코 감정을 가질 수조차 없는 우리민족만의 것. 소설가 김별아의 산문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는 그녀와 가족이 지인들과 함께 20개월에 걸쳐 무려 39차의 백두대간 등반기를 기록한 책이다. 그러나 전문 산악인이 아닌 문인인 그녀가 이 책을 통해 풀어놓은 이야기는 산을 오르는 기술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마음속에 깊이 각인 시켜 놓았을 법한 銘文들을 중간에 소개하고 그녀의 이런 저런 소회를 풀어 헤치는 구조로 되어 있다. 인용된 문장과 싯귀들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다들 사는 것에 대한 일정한 노하우는 가지고 있구나 싶었다. 이글 맨 위에 인용한 구절도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에 들어 뽑은 일부분이다.


동년배인 저자의 생각이 나에게 미칠 때 친구는 이런 생각을 하며 멋지게 사는 데, 난 그렇게 하지 못하였구나 라는 느낌도 들었고, 친구가 앞으로 이런 삶을 살겠다고 다짐을 하는 글을 보면 좀 따라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책은 공감과 치유의 산행에세이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적확한 표현이라고 본다. 책은 산행기록을 담고 있지만 그녀와 가족이 어디를 목적지로 했다는 기록보다 산행을 이어가면서 느끼는 삶의 일상, 그리고 추억, 반성, 회한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물론 다양한 레파토리의 레퍼런스까지 포함하여.


말이 700km이지 평지도 아닌 산등성이와 계곡과 험지를 따라 걷는 일은 무한한 도전이 아니고서는 하기 어렵다. 그녀도 후기에 밝힌 것처럼 스스로를 독하다라고 표현했다. 완주에 기뻐하기보다 완주라는 목표를 이루고도 기뻐하지 않는 자신에게 놀랐다고 한다. 小事에 일희일비하는 우리들에게 그녀가 정말 하고픈 말은 무엇이었을까? 산을 타는 도중엔 그렇게 많은 말이 필요없다. 오로지 자신에게 묻고 자신에게 대답을 한다. 어쩌면 이 책도 그 과정에서 영근 과실인 셈이다. 집에서 편안하게 누군가의 땀의 결실을 나누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동네 뒷산에라도 올라 야호라도 외치며 나를 돌아보는 몇 시간이라도 만들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괜찮다 우리는 꽃필 수 있다

저자
김별아 지음
출판사
해냄출판사 | 2012-05-3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지리산에서 시작해 마침내 진부령에 이르기까지 ‘온몸으로 온몸을 ...
가격비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