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아부의 왕 - 아부 또한 살아 남기 위한 전략

효준선생 2012. 6. 27. 08:48

 

 

 

 

어느 조직이든 유난히 다른 사람의 호감을 잘 얻어내는 사람들이 하나 둘은 있습니다. 그런 사람을 일컬어 흔히들 비위를 잘 맞춘다는 말을 하지요. 여기서 말하는 비위란 인체 장기중의 하나인 지라와 위장을 말합니다. 둘다 소화기관인 셈입니다. 이 기관이 고장이 나면 인간은 어떤 음식은 소화를 못 시킬 수 밖에 없습니다. 비위가 튼튼해야 잘 먹고 잘 소화하고 잘 싸는 이른바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비실거리거나 잔병치레를 자주 하지요. 요즘 아이들 중에서도 유난히 키가 크지 못해 고민이라면 바로 이 비위를 “補”해주는 처방이 필요합니다.


서두에서 비위에 대해 길게 쓴 이유는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 즉 아부에 대해 말하고자 해서입니다. 아부는 무엇인가요? 자기보다 우월한 지위에 있는 사람의 심성을 잘 살펴 거슬리지 않고 심지어 불편한 기색마저도 유화롭게 하기에 자신의 모종의 이득을 잘 취하는 행위를 일컫는 말입니다. 그런 행위는 제 3자의 눈에는 상당히 거슬리지만, 결국 얻어내는 성과물만 지켜보고 있으면, 부럽기도 하기 마련입니다. 그럼 아부를 잘 하는 사람의 속은 과연 어떨까요? 천성적으로 아부를 잘 떠는 사람도 있는 반면, 자신의 속마음을 죽이고 타인의 마음을 먼저 헤아린다는 게 정말 힘들지만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할때가 있다는 건,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즉, 마지 못해 할 수 밖에 없음이지요.


현대 사회는 아부의 세상일지도 모릅니다. 갑과 을로 꾸며진 세상살이에서 타인의 비위를 맞추고, 아부를 떤다는 게 과연 욕만 먹을 짓인지, 아니면 생존을 위한 최후의 발악인지는 결국 본인이 선택한 것이고,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겠지요.

영화 아부의 왕을 보면 일개 별볼일 없어 보이는 남자가 등장합니다. 이름하여 동식, 관리직인 개발부서에서 눈칫밥 먹다가 일선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업직으로 좌천(?) 당합니다. 이 친구 센스가 없어 보입니다. 눈칫밥을 먹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타른 직원들은 다아는 아부의 기초도 모르는 모양입니다. 이래서야 사회생활을 하기는커녕 왕따당하기 딱 십상입니다. 그래도 사람인지라 살기 위해 마지막으로 선택한 방법이 아부의 고수를 만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같은 회사 전설의 보험왕의 뒤 꽁무니를 따라다니면서 그대로 따라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하지만 제대로 먹힐리 없지요. 욕만 먹습니다. 그래서 찾아나선 사람이 바로 “혀고수”라는 아부의 왕입니다. 혀고수는 대체 누구인가요? 그는 직접 영업을 하는 사람도 아니고 번듯한 직업이 있어보이지도 않습니다. 허구허날 찜질방에서 빈둥거리는 게 일처럼 보입니다. 컨설턴트의 위엄도 없어보입니다. 그럼에도 그 바닥에선 전설로 통하고 본인은 아부가 아닌 감성영업이라며 허세를 부립니다. 동식은 지푸라기라도 붙잡는 심정으로 그에게 매달립니다.


근데, 그동안 눈치없이 대충 살아가는 것 같았던 동식이 혀고수라는 실체가 불분명한 인사에게 매달리는 걸까요? 영화에선 또 하나의 라인을 깔아두고 있습니다. 바로 고리대금업자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전직 복서출신을 필두로 3인조의 사채업자들은 동식의 어머니가 빌린 돈을 갚으라며 동식을 위협하고 그 때문에 동식은 단기간에 거액의 돈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이죠. 그런데 이들 사채업자의 몸통은 따로 있었습니다. 동식의 보험회사가 역점 사업으로 여기는 홈쇼핑 진출입니다. 요즘엔 홈쇼핑에 보험 상품도 판매가 되는 모양인데 만약 여기에 나가게 되면 동식은 금전적인 해방을 바라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처음엔 어리버리한 모습으로 고객들에게 망신만 당하던 동식이 아부의 기술을 전수받고 조금씩 발전된 모습을 보이며 드디어 보험왕에 오르지만 그걸로는 택도 없는 모양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지점입니다. 고객을 아부가 되었든 감성영업이 되었든 가입을 시킨 것이 “正” 이라면, 모종의 계략을 들고 홈쇼핑 사장의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홈쇼핑 방송을 따내는 작업은 이른바 “負”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홈쇼핑 회사의 회장은 척결의 아이콘입니다. 그리고 동식과 사적으로도 두 가지 악연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채업자의 몸통이 바로 이 홈쇼핑 회장입니다. 자신을 죽도로 괴롭히는 사채업자도 결국은 이 회장의 지시인 셈입니다. 둘째, 회장은 돈을 무기로 거래처 사장의 딸을 후실로 들이는데 이 여자가 바로 동식의 옛 애인입니다.


말도 안되는 악연이라고요? 세상은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인연이 얽히고 설킨 끈입니다. 이 영화는 바로 이 엉망진창, 한 남자를 얽매고 있는 끈을 어떻게 풀어주는 지를 보여주는 장치로서 작용을 합니다. 영화의 후반부는 바로 이 끈을 잘 풀고 모든 일을 제자리로 돌려놓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동식, 혀고수, 그리고 미모의 로비스트가 끼어들겠죠.


이 영화의 줄거리를 찬찬히 살펴보면 앞부분에선 아부가 지금을 살아가는 별볼일 없는 남자에게 왜 필요한지, 그리고 어떤 방식이어야 하는지를 코믹하게 설명하고 있다면 후반부는 그 예증을 피력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런 부류의 인간을 아직 접하지 못한 경우, 이 영화는 지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채업이라는 고리를 접점으로 싫어도 비위를 맞추어야 하고 그래야만 목숨을 유지할 수 있는 절박함이 있다면, 세상엔 못할 일이 없을 겁니다. 영화 엔딩에서 이런 저런 고초를 겪은 뒤, 혀고수에 이어 아부의 달인으로 등극한 동식의 당당한 모습이 부감영상으로 떠오릅니다.


웃기는 배우인 성동일, 송새벽이 투 톱을 맡았다고 해서 막연한 코미디 장르물로 보기엔 어렵고 세태를 심각하지 않게 담아낸 시츄에이션 코미디라고 하면 맞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세상에 아부아닌 게 어디에 있을까요? 그게 처세라면 우린 대세를 따라야겠지요. 갑보다 을이 많은 세상에 살기에. 

 

 

 

 

 

 

 

 


아부의 왕 (2012)

6.3
감독
정승구
출연
송새벽, 성동일, 이병준, 김성령, 고창석
정보
코미디 | 한국 | 118 분 | 2012-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