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코리아 - 피는 물보다 진했다. 그래서 눈물이 났다

효준선생 2012. 4. 30. 01:01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이라 했다. 남북 관계가 경색된 즈음에 정략적으로 실행된 스포츠쇼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남북한 국가대표선수들이 단일대오를 이루어 하나의 목표를 두고 세계대회에 출전한 것은 첫 번째로 기억한다. 1991년 일본 지바에서 열린 탁구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코리아”팀은 막강전력을 자랑하던 당시 천하무적 중국을 격파하고 자랑스런 금메달을 획득했다. 단체전의 승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소명의식과 남과 북이 어쩌면 다시는 하나의 팀으로 뛸 수 없을 지도 모른다는 아쉬움이 결합된 상승작용이었다.


영화 코리아는 오랜만에 보는 감동 스포츠 드라마였다. 기존의 스포츠 영화들이 우승이라는 목표에 초점을 두고 선수 개개인의 일화에 감정을 실어보냈다면, 이 영화속 주인공들은 너무나도 이질적인 환경에서 20년 넘게 살아온 남과 북의 청년들이 하나가 되는 과정을 유쾌하게 또 그럴 듯 하게 그려내서 실제 당시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며 추억에 잠길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당시 경기기록이나 우승팀이 '코리아'였는지 조차 가물가물하지만 현정화, 이분희, 유순복의 이름은 확실하게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기억속에 각인되어 있는 것은 흰바탕에 하늘색으로 그려진 한반도 깃발이었다. 아무런 치장도 아무런 문구도 없는 그 깃발 하나에 당시 사람들은 어쩌면 저 깃발이 통일 한국의 국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가져보았을 것이다. 그만큼 열망도 컸고 결과도 좋았다.

 

 

당시는 작은거인 鄧亞萍이 이끄는 중국의 탁구가 천하무적인지라 늘 2,3위권이었던 한국과 북한의 탁구실력으로는 그들을 꺾고 이기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나마 현정화나 홍차옥(극중에선 최연정으로 각색)가 나선 단, 복식등에서 간간히 금메달을 따온 적은 있었으나 선수층이 얇은 한국팀만으로는 단체전 금메달은 언감생심이었다. 북한 역시 단출한 팀구성으로 이분희 정도만 상위랭커로 우승을 노려볼 만한 다크호스였기에 이 두 팀의 에이스가 한 팀이 된 91년은 그야말로 중국을 누르고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최상의, 그리고 최후의 기회가 아니었을까 하는 판단이다.


또 하나 남북 단일팀이 성사된 이면에는 당시 강하게 불어닥친 북방외교의 결실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중국과 소련을 비롯해 유난히 북방외교에 심혈을 기울였던 노태우 정부는 스포츠를 통해 남북관계 역시 해빙무드를 타고 있음을 보여주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한 끝에 우선적으로 그 효과가 뚜렷할 것으로 보이는 탁구를 선택했다는 해석이다. 영화속에서도 이런 설명을 뒷받침하는 조짐은 여러차례 보였다. 특히 북한 관계자입을 통해 나온 “북한의 이분희, 유순복이 복식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이분희, 현정화가 나가는 편이 결과에 상관없이 더 좋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나”라는 말이 가장 설득력이 있어 보였다. 당시 국제정세가 어찌되었든, 이 대회 이후 축구등 다른 종목에서는 남북한 단일팀 구성이 시도 된바 있었지만 남북한 탁구 선수단은 다시는 단일팀을 이루지 못한 것은 아쉬웠다. 우연의 일치인지 모르지만 이 대회이후 현정화, 홍차옥의 은퇴를 거치며 한국 탁구는 오랜 시간 침체기를 거친다.

 

 

영화의 전반부는 어색했다. 영화의 情調가 아니라 남한과 북한의 선수들이 어울리는 장면에서 당연히 그래보여야 하기 때문에 그 분위기가 제대로 전달되었다. 하지만 청춘들에겐, 설사 겉으로는 이데올로기의 가면을 쓰고 있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 같은 말을 쓰는 같은 민족이라는 변치 않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둘은 하나가 되기에 충분해 보였다. 물론 융합되지 못해 쩔쩔매는 장면도 나왔지만 그때마다 영화는 코믹한 내용을 실어 웃음과 찡함을 교차해서 보여줌으로써 결코 승부에만 집착하는 운동 영화로 머물지 않게 했다.


워낙 무거울 수 있는 주제인 남북관계를 그리고 있지만 총칼이나 이념의 문제보다 눈앞의 승리에 매진하고 또 그들의 속내가 서로에게 인정받아가는 과정을 통해 그들도 우리와 진배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경기력 표현 역시 훌륭했다. 작은 공이 네트를 사이에 두고 왔다갔다하는 빠른 속도감이 필요하기에 공의 궤적을 따라가는 고속카메라와 결승전 막바지에 사용한 특수 카메라 촬영등은 매우 역동적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긴장감이 고조된 장면을 꼽으라면 북한 팀에 문제가 발생해 호텔에 발이 묶인 상황에서 북한 팀 감독이 북한의 감시대장과 눈싸움을 벌이던 장면을 꼽아본다. 그 장면의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지만 그때의 압박감은 터질 것 같았다.


모두에서 말한 것처럼 만나는 사람은 헤어지고 헤어지는 사람은 언젠가 다시 만난다고 한다. 이 경기 후 2년 뒤 그들은 다시 만났고 그 이후 다시 만난 적이 없다고 한다. 모두 현역에서 은퇴한 지 십수년이 지난 지금, 서로를 기억하며 다시 만날 수 있는 그날은 언제나 가능할까

 

 

 

 

 

 

 


코리아 (2012)

9.4
감독
문현성
출연
하지원, 배두나, 한예리, 최윤영, 박철민
정보
드라마 | 한국 | 127 분 | 2012-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