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서평]책 읽고 주절주절

서평 나의 삼촌 브루스 리 - 누군들 아프지 않은 청춘이었으랴

효준선생 2012. 3. 5. 00:48

 

 

 

 

 

한때 우리는 꿈을 꾸고 살았다. 그건 밤이 되고 잠이 들어 몽환처럼 다가오는 꿈이 아니라 눈을 뜨고 있어도 머릿속에 아른거리며 실체적으로 보이는 미래의 꿈이었다. 어른들은 그런 꿈을 자주 꾸어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된다고 말씀하시며 두꺼비 뱃가죽 같은 손바닥으로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꿈이 사라졌다. 억지로 일부러 꿈이란 걸 꾸려고 애를 써보지만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나오는 현실속의 즐겁지 않은 이야기들에 막혀 하나 둘씩 꿈을 잃어가게 되었다. 사업가가 되고 싶었지만 재벌들이 패악질을 하는 통에 휠체어 타고 검찰을 들락거리는 모습이며, 정치인이 되고 싶었지만 줄서기에 빠삭하고 국민들을 요령있게 속이는 모습에 학을 떼고 선생님이 되고 싶었지만 촌지를 밝혀가며 아이들에게 주먹질이나 해대는 모습에 진력이 났다. 아이들은 그렇게 실현가능한 꿈들을 목록에서 지워나가고 결국 남들이 하는 대로 상급학교 진학에 군대에, 그리고 만만한 직장에 취업해 월급쟁이로 만족하곤 했다.


그게 인생살이라고 했다. 좀 더 나이가 들어 생각해보니 살아온 삶이 극적인 반전도 하나 없는 밋밋한 이야기라 싫었다. 글 쟁이가 되고 싶었고 끄적거리다 보니 결국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삼촌 하나 있었고, 친구 몇몇이 등장하는 소설이 되었다.


작가 천명관의 나의 삼촌 브루스리는 성장소설에 가깝다. 이 소설의 話者는 삼촌의 조카인 “나”다. 그럼에도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삼촌의 시점에서 이야기 대부분이 풀려간다. 거기에 동네 양아치 몇 명과 절친인 종태, 그리고 집안 사람 몇몇이다. 그럼에도 1,2권 합쳐 900페이지나 되는 장편소설이 될 수 있었던 건, 70년, 80년, 90년을 관통해 최근의 한국사회를 통시적으로 다루고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들의 삶은 드러매틱했다. 비슷한 점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삼촌은 수상한 출생의 비밀을 가진 자 답게 삶도 수상했다. 그리고 그게 이야기거리가 되었다. 소위 주워온 자식이었던 삼촌, 의지할데 없는 고아나 다름없었지만 나의 눈에 그는 흥미로운 사람이었다. 마치 한국 최근대사를 하나씩 밟아가며 살았던 흔적을 가진 그다. 지금부터 2,30년전 이야기가 흥미롭지 않은 소재라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필요가 없다. 읽다보면 어느새 몇 페이지가 후닥 지나갈 정도로 흡인력이 있다.


종태네 소이야기, 그리고 삼청교육대 이야기, 중국집 이야기 그리고 여배우와의 로맨스등은 각각을 하나의 단편으로 다뤄도 될 정도로 짜임새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복선이자 단서가 된다. 1권에서는 각각의 스토리가 펼쳐진 느낌이 들지만 2권에서는 모두를 수렴하고 있다.


화자인 “나”의 이야기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삼촌과 배우인 원정과의 로맨스에 치중되어 있다.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로맨스라고 해도 좋을지 모르지만 권력에 기대어 무소불위 행패를 일삼던 영화판의 실력자, 그리고 밤의 꽃으로 전락해가는 여배우들의 불편한 진실들이 한없이 녹아있었다.  그 외의 동천이라는 가공의 신흥도시를 둘러싼 헤게모니 쟁탈전들이 시대상과 맞물려 쫀쫀한 내러티브를 선사한다.


이 소설의 재미있는 부분은 홍콩배우 이소룡의 출연작품을 章節의 제목으로 삼았다. 그리고 고의인지 모르지만 일부러 마침표를 제거하고 원고지 3,4 장 정도 길이의 문장을 끊지 않고 써내려갔다. 1권에서만 4, 5군데에서 발견된다.


홍콩 영화를 좋아하고 특히 이소룡의 광팬임을 자처하는 삼촌, 그런 삼촌을 보면서 성장해 온 나와 종태. 한때는 철천지 원수가 되었다가 한편으로는 의지할 곳이라는 그밖에 없는 인연의 끈으로 연결된 듯 한 그들. 소설 나의 삼촌 브루스 리는 그래서 재미있게 읽히는 소설을 원하는 독자에게 권하고 싶다. 

 

 

 

 

 

 


나의 삼촌 브루스 리. 1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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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삼촌 브루스 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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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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