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컷 - 영화인이 영화를 꼬집을때의 절통한 심정

효준선생 2012. 2. 12. 00:13

 

 

 

 

이란 출신의 아미르 나데리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일본 영화 컷은 고발영화다. 무엇을 고발하느냐 하면 바로 오늘날의 영화다. 영화속 주인공은 메가폰을 들고 멀티플렉스와 거대자본의 예속되어 양산되는 쓰레기 같은 오락영화를 거부하자고 외친다. 그는 그 옛날 영화를 예술로 승화시킨 소위 거장들의 영화만이 진정한 영화라고 喝破하고 있다.


영화 컷의 주인공은 슈지는 그 자체가 영화인이자 영화다. 영화를 만들지 못하는 이유는 돈 때문이고 그 돈을 만들려다 죽은 형은 이를테면 가난한 제작자인 셈이다. 공공장소에서 틀어주던 흘러간 명작들은 더 이상 그곳에서 상영하지 못하게 된 것도 관 주도의 반문화정책에 대한 반항인 셈이다. 그 대신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집 옥상에 간이로 극장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고전영화를 틀어주는 걸로 만족한다. 이를 테면 단관 예술영화전용관인 셈이다. 하지만 그것도 여의치 못하다. 형이 남겨놓은 빚을 갚으라는 조폭들의 성화에 못이겨 그는 졸지에 인간 샌드백이 되기로 한다.


슈지는 외곬수 인생처럼 보인다. 1천2백여만엔이라는 터무니 없는 액수의 빚을 보름안에 갚을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그는 큰소리를 치고 자신의 몸뚱아리를 세상에 내놓는다. 얼굴은 성할날이 없고 뱃가죽엔 자주빛 옥도정기를 발라놓은 듯 하다. 그럼에도 그는 포기하려들지 않는다. 인간이 그렇게 매일, 수백대씩 주먹을 맞는다면 살아남기 힘들다. 영화는 슈지의 끈기를 통해 진정한 영화를 만들기 위해 참아야 할 것과 포기하지 말아야할 것에 대해 은유하고 있다.


슈지는 매를 맞는 순간에도 자신의 시네필 상영회의 회차와 영화의 제목 그리고 관객수를 암송한다. 중얼중얼, 수십 명에 불과한 관객수는 좌절스럽다. 그럼에도 그는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게 주워 삼킨다.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영화의 배경이 되는 나쁜 놈들의 아지트. 꽤 넓은 공간에 한쪽에 바가 있고 가운데엔 복싱링이 있다. 이상한 건 단 한번도 그 링을 사용하지 않았다. 대신 형이 죽은 장소라고 하는 남자 화장실만 고집한다. 더럽고 냄새나는 그곳만 고집하는 이유라도 있는 것일까

영화는 만드는 사람에겐 예술인지 몰라도 보는 관객에겐 예술로만 여기고 접할 수는 없다. 슬픈때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게 웃기는 영화가, 우울할때는 근육질 마초맨들이 나와 화끈하게 파괴하는 액션영화가 고프다. 그런데 그런 영화들을 고품질 예술영화가 아니라고 매도할 수 있나.


돈을 갚기로 한 마지막날 부족한 돈을 채우기 위해 한꺼번에 매를 번다. 그 장면 위로 떠오르는 무려 100편의 영화들. 소위 거장들이라고 하는 감독의 영화들이다. 그중엔 많은 수가 일본 영화감독의 작품이 있고 한국의 이창동 감독이 만든 박하사탕도 들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시민케인이었다.


맞는 이유도, 때리는 이유도 현실적이지는 않다. 매 한대에 10만원이나 내서 모두 1억 5천만원에 가까운 돈을 만들어주는 깡패들이 어디 있겠나 어찌보면 그들의 주먹은 십시일반 모아준 후원자들의 성금은 아닐까 많아 보이는 돈이지만 요즘 1억5천 만원엔 독립영화 한 편 찍기도 어렵다. 혹시 이 영화의 순제작비는 아니었을까.


많이 비타협적인 영화지만 결국 영화인들의 자기 高喊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되더라고 자기 이름을 걸고 만드는 영화를 위해 그들은 하루 하루를 버티면서 산다고. 장국영과 영화 성월동화에 나왔던 토키오 다카코의 모습을 정말 오랜만에 보았다. 

 

 

 

 

 

 

 


(2012)

Cut 
9.4
감독
아미르 나데리
출연
니시지마 히데토시, 토키와 타카코, 사사노 타카시, 스가타 슌, 덴덴
정보
드라마 | 일본, 프랑스, 미국, 터키, 한국 | 120 분 | 201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