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워 호스 - 우리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을거야... 그렇지?

효준선생 2012. 2. 8. 02:03

 

 

 

 


전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많은 것을  앗아간다. 사랑하는 것들, 알고 있는 것들, 근처에 두고 눈에 익혔던 것들을. 익숙한 것과의 헤어짐으로 인해 슬픔이 수반되지만 승전을 위해 희생하라는 무거운 엄포만이 떨어질 뿐이다. 전쟁을 겪으면 어느 한 편은 승리를 쟁취하겠지만 그 사이에서 사라진 수많은 생명의 흔적, 세상 왔다 갔는지도 모를 만큼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수도 있다.


馴化, 야생에서 자라 인간의 의지에 따르지 못한 동물을 길들이는 과정과 그 결과를 말한다. 짐승뿐 아니다. 어른들에 의해 어린이들은 순화된다. 어른들이 만들어놓은 기성체제에, 그리고 그렇게 자라야만 모든 것이 좋고 좋은 것이라고 배운다. 그리고 그 아이들이 자라서 후 세대에게 자신이 받았던 그 과정을 고스란히 물려준다. 좋은 지 나쁜지는 중요하지 않다. 거슬리지만 않으면 된다. 목장에 갇혀 바깥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모른 체 주인의 말만 따르면 질 좋은 풀을 얻어먹을 수 있기에.


驛馬煞이라고 하는 것. 한 곳에서 태어나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머물기란 어렵다. 공동체가 아닌 현대 사회에선, 돈을 좇아, 명예를 좇아 더 큰 기회를 좆아, 하지만 이런 자의적인 역정이 아니라 타의에 의한 몰이가 된다면 그건 고통이다. 여기가 어딘가 나를 지배하고 나를 길들이려고 하는 당신들은 누구인가. 돌아가야 할 곳 조차 희미해졌다. 무의식에 남아있던 휘파람에 대한 반응만이 내 갈기를 곧추세운다.

 

영화 워 호스는 제목 그대로 軍馬 라는 의미다. 대량 살상무기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 기마는 최고의 군수물자였다. 게다가 직급이 낮은 군졸들은 말 등에 올라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말을 탄다는 것은 그만큼 가진 게 많다는 의미이며 그것 때문에 좋은 말은 그 가치를 인정받아 몸값도 높일 수 있었다. 영화속 주인공은 단연코 조이라고 불리는 한 필의 준마다. 오프닝은 바로 이 조이의 탄생과정이며 영화 거의 대부분은 조이의 여정을 따른다. 하지만 그 여정은 결코 순탄치 않다. 오로지 전쟁터와 말 경매장등으로 휘둘리며 그 사이 바뀐 소유주만 해도 예닐곱 명이나 된다. 하지만 조이를 잊지 못하는, 조이가 잊지 못하는 주인은 제일 먼저 자신의 진가를 알아준 알버트다. 자신이 세상에 나오는 순간을 지켜봐준 산파, 거칠기만 하고 예민한 성격의 자신을 올바른 길로 잡아준 스승, 언젠가 다시 만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잊지 않은 친구. 그리고 남은 여생을 함께 해줄 반려자가 바로 그다. 조이와 알버트의 우정은 타의에 의해 헤어짐을 겪었다가 다시 만나는 과정을 극적으로 묫함으로써 인간 대 인간의 우정 못지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물론 중간에 조이의 고삐를 움켜쥔 사람들도 대부분은 善人이다. 광풍처럼 몰아친 위험한 시절에 그래도 조이를 진심으로 위해주려고 했던 그들이 아니었다면 조이 역시 친구 블랙호스처럼 전장에서 숨을 거두었을지도 모른다. 재미있는 것은 조이에겐 이름이 많다는 점이다. 독일군에게, 프랑스 민초에게 넘겨질때마다 서로 다른 이름이 부여되었고 그게 조이의 또다른 정체성이 되었다. 또 매번 주인의 국적도 바뀌는 기막힌 인연을 갖게 된다.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에 의해 재현된 1910년의 목가적 분위기의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독일의 농촌, 야산의 모습은 전쟁의 잔해만 아니었다면 정말 한편의 풍경화처럼 아름답게 비춰졌다. 한동안 SF영화에 경도되어 그런 류의 영화를 찍었던 감독에게 초기 작품의 냄새가 났다. 정말 어렵사리 해후한 알버트와 조이가 석양이 지는 언덕을 걸어 올라가는 실루엣은 이 영화를 멋지게 매조지하는 인상적인 영상이다.


말은 인간의 말을 하지는 못한다. 그러나 알아듣는 듯 했다. 프로페셔널 동물 연기자라고 해도 스스로를 다치게 할 수도 있는 어려운 연기를 마치 스턴트맨처럼 해내는 전쟁통속의 연기엔 박수를 쳐주어야 마땅했다. 이 영화에서 자못 감동적인, 마음이 짠해지는 장면들이 많다. 추운 겨울 마음이 따뜻해지길 바란다면 이 영화, 각종 시상식에서의 수상여부와 상관없이 선택해도 좋은 영화다. 조이의 맑고 투명한 눈망울이 여태 기억에 남는다.

 

 

 

 

 

 

 

 


워 호스 (2012)

War Horse 
8.2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출연
제레미 어바인, 에밀리 왓슨, 피터 뮬란, 톰 히들스톤, 베네딕 컴버배치
정보
전쟁 | 영국, 미국 | 146 분 | 2012-02-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