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초한지 천하대전 - 난세의 영웅은 한 명이면 족하다

효준선생 2012. 1. 10. 08:18

 

 

 

 

力拔山氣蓋世라고 했다. 초나라 항우를 묘사하는 가장 그럴 듯한 미사여구. 그러나 한겹 벗겨놓고 보면 그 말 안에는 무식한 힘빼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말도 포함하고 있다. 90년대 초 중국 영화 서초패왕은 바로 이 항우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데, 황제의 자리에 한발짝 남겨두고 용인술에 실패해 나락으로 떨어진 비운의 주인공 항우에게 연민의 정을 느끼게끔 장치해 둔 게 기억에 남았다. 중국 문학을 공부하다보면 초사를 빼놓을 수 없고 그 중에 해하가는 또한 항우의 마지막을 절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현대에 와서도 궁지에 몰리다라는 경우에 쓰는 四面楚歌도 바로 이 당시의 전황에서 나온 사자성어이며 이 모든 것이 초한지라는 걸출한 역사의 한페이지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진시황제가 세운 진나라가 후대 황제들의 어리석음으로 말미암아 단명하고 천하는 분열되었다. 그중에서 남방에서 흥기한 초나라의 강성이 두드러져 사람들은 초나라가 진의 뒤를 이어 전국을 통일할 것으로 여겼다. 항우는 바로 이 초나라의 귀족이었다. 아니 그의 집안 대대로 한자리를 해왔기에 적령기의 항우는 앉아서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되었다. 한편 지금의 강소성 패현 출신의 유방은 서민출신이었다. 허나 영민하여 작은 하급관리에서 시작해 조금씩 관직을 높여갔고 유난히 사람을 규합하는 능력이 좋아 그의 명망을 듣고 모여드는 인재들이 많았다.


하늘아래 영웅은 한 명이면 족했다. 항우와 유방 모두 걸출한 시대의 영웅이었으나 이들의 대결은 일방의 승리로 귀결되고 만다. 다 알려진 대로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았던 유방의 승리는 그야말로 개천에서 용이 난 케이스로 사람들은 그를 자수성가의 대표적 인물로 추앙하고 있으며, 한편 비운에 간 항우의 경우엔 소통의 부재가 가져온 안타까운 경우로 입에 올려왔다.


영화 초한지 천하대전은 바로 이 항우와 유방의 결전을 홍문연이라는 결정적 순간을 가운데 두고 그려낸 심리극이었다. 전쟁장면이 적지 않은 역사물을 심리극으로 치부한 이유는 무기를 들고 서로를 죽이는 전투 장면 그 이상으로 항우, 유방 그리고 이 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범증과 장량의 서로를 읽는 수싸움이 전편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특히 바둑을 매개로 서로를 간파하려는 시도는 여느 스릴러물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었다. 중국영화를 보면서 늘 부각된 지나친 민족성과 오버스러움은 배제하고 긴장과 갈등을 주 재료 삼아 기름끼 쏙 빼고 그려낸 이 영화는 간만에 보는 중국영화의 수작이었다.


수세에 몰려 있던 유방이 천하대업을 완수한 이면엔 결국 용인술이었다. 일등공신이라고 할 수 있는 장량을 군사로 쓰는 장면은 삼고초려의 원형 같았고, 장량에 버금가는 꾀돌이 한신도 원래는 초나라 사람이었으나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는 항우에겐 날 건달에 불과했지만 유방에겐 없어선 안될 인재로 대접받았다.

거기에 삼국지 촉나라 장비에 버금갈 정도로 유방에게 충성을 다했던 번쾌와 하후영등, 유난히 유방 곁에 인재들이 많았으며 유방 역시 그들을 믿고 쓰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허나 항우는 자신의 기력만을 과신한 채 이미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이 행동하며 주변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련의 여주인공으로 비춰지는 우미인(우희)의 경우도 어쩌면 항우가 올바른 판단을 하는데 방해요소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하물과 친인척인 항백의 경우, 홍문연에서의 결정적 장면을 놓치게끔하는 고의적 실수를 하지 않았는가. 그의 유일한 멘토인 범증이 羽化한 뒤 항우의 행동을 보면 과연 그가 천하의 패주가 됨에 있어 충분했는지에 대해 금새 알 수 있을 것이다.


나라를 얻는 다는 것은 사람을 잘 써야 한다는 말과 같다. 비록 천하지존의 자리에 올랐으나 늘 누군가 자신을 해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려 공신들을 물리치는 兎死狗烹의 예가 이 영화의 말미를 장식한다. 죽은 범증이 항우를 대신해 유방에게 일정부분 복수를 하는 장면에선 정말 시대의 주인공은 항우나 유방이 아닌 범증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에 보는 4대 천황 黎明의 분장은 진시황제가 조성한 병마용갱의 병사얼굴을 하고 있어 이채로웠으며 張涵予가 맡은 장량은 배우라면 누구나 탐을 낼 캐릭터였다. 이젠 레전드가 된 黃秋生과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최강동안 劉亦菲등도 제몫을 했다.  

 

 

 

 

 

 

 

 

 

 


초한지 - 천하대전 (2012)

White Vengeance 
8.6
감독
이인항
출연
여명, 유역비, 풍소봉, 장한위, 황추생
정보
액션, 전쟁, 시대극 | 중국 | 137 분 | 2012-0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