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타워 하이스트 - 펜트하우스를 어큐파이하라

효준선생 2011. 11. 18. 01:24

 

 

 

화난 군중이 미국 금융의 심장이라고 부르는 월 스트리트를 점령(Occupy)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그들은 월가의 금융그룹과 핵심 경영인들을 탐욕에 찌든 자로 규정하며 그들이 가진 부를 내놓을 것을 요구한 것이다. 자유시장주의를 신봉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들의 경제논리가 만병통치약이자 교본인 것처럼 전 세계에 전파해온 그들로서는 제대로 한 방 먹은 셈이었다.


2008년 금융위기가 촉발된 곳도 바로 월가였다. 하지만 정작 피해의 당사자는 은행으로부터 돈을 빌어다 집을 산 사람, 혹은 그 은행에서 근무하다 은행 파산이후 졸지에 실업자가 된 몇몇 직원들 뿐이었다. 금융회사의 몰락이 마치 대단한 일인 것처럼 국민들의 세금은 공적자금이라는 이름으로 하염없이 흘러들어갔고 정작 책임을 져야할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떵떵거리며 지금껏 잘 살고 있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하에서 부의 편중은 결코 없는 자의 편에 서지 않는다. 기득권을 가진자, 그리고 그 기득권에 빌붙어 콩고물이라도 얻어먹을 눈치를 가진 자의 몫이었다. 세상의 돈은 마구 무제한 찍어 낼 수 없기에 결국 한정된 재화는 누군가의 주머니에서 나와 다른 누군가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수순을 따를 수 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새치기를 하며 남보다 많은 돈을 벌려면 그 만큼의 리스크는 자신의 몫이거나 책임이 된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영화 타워 하이스트엔 두 개의 그룹이 맞선다. 월가의 큰손으로 불리는 아더, 그리고 그가 사는 최고급 아파트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를 근근히 살아가는 직원들. 언뜻 보기엔 게임도 안되어 보이는 그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터진 것일까


아더가 큰손이라는 호칭을 얻으며 재테크의 귀재가 된 것엔 분명 타인의 부를 일정부분 불려준 역할이 있다. 그걸 본 사람들은 “미투”를 외치며 얼마 되지도 않는 푼돈을 들고 그에게 달려들었을 것이다.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수가 있는 법. 껌값인 투자금을 아더가 고의가 되었든, 운이 나빴든 몽땅 까먹었다면 대체 그 책임은 누구에게 전가할 수 있을까


영화에선 전직 아파트 관리 매니저였던 조시(벤 스틸러 분)의 깃발 아래 자신의 돈은 자신이 직접 찾겠다고 나서지만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다. 텅빈 철제금고가 그들의 돈은 이미 또다른 누군가의 주머니속으로 들어가 버렸음을 암시한다. 그래도 영화적 재미를 위해 아더의 또다른 재화인 자동차를 훔치려 아등바등거리지만 그건 이미 타인의 재물을 훔치는 약탈적 절도 행각에 불과할 뿐이다.


인간은 수렵을 하며 개인 재산의 축적이 가능한 시대로부터 지금까지 부의 공평한 분배는 불가능했다. 근면 성실과는 별개의 문제다.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손가락 몇 번 까닥이고도 그들보다 수 천배 이상 돈을 벌어들이는 사람이 있어왔다. 그걸 재복이 있다며 부러워만 할 필요는 없다. 빼앗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인간 스스로가 만든 법이라는 굴레에 빠져들게 되고 만다. 그걸 누가 원하겠는가.


조시 일행은 이런 저런 머리도 쓰고 계획도 세워 이를 실행에 옮기지만 영화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한 장면들이 속출했다. 코미디적 요소가 실리면서 많이 웃을 수 있었지만 여전히 가진 자로 행세하는 아더의 무덤덤한 모습은 그가 설사 감방에 가더라도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아주 특수한 자동차를 분해해 하나씩 나눠가지며 歡呼雀躍한 그들의 모습이 애틋해보였다. 결국 그 나눠져 버린 자동차는 누군가의 손으로 다시 조립되어 한 사람의 소유가 될테니 말이다. 

 

 

 

 

 

 

 

 

 


타워 하이스트 (2011)

Tower Heist 
8.5
감독
브렛 래트너
출연
벤 스틸러, 에디 머피, 케이시 애플렉, 앨런 알다, 매튜 브로데릭
정보
액션, 코미디 | 미국 | 105 분 | 2011-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