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통증 - 백짓장을 맞든 상처투성이의 남녀

효준선생 2011. 9. 9. 01:27

 

 

 

 

간만에 가슴 절절한 신파영화를 보았다. 다들 고개를 흔들던 곽경택 감독, 권상우, 정려원 주연의 영화 통증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뻔하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봤나? 어디가 그렇게 뻔하나?” “안봐도 뻔하다”


신파라는 것도 한동안 안들으면 귀가 심심해지는 트로트 음악마냥 가끔은 일부러라도 골라보게 하는 마력이 있다. 한국인에게만 있는 恨의 정서의 도출이라고 할 수도 있고, 어쩌면 우리 일상도 신파의 연속이 아닐까 하는 기분도 든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 데이트는 걷는 길이 꽃길처럼 보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면 세상이 당장 무너질 것 같은 충격에 휩싸이기도 하는 경험은 다들 겪어본게 아닌가. 그런데도 그런 것을 신파조라면 무시하는 것은 무슨 심보인지 모르겠다.


부산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고 늘 사내들의 땀냄새와 남성우월주의가 팍팍 들어가서 안티팬들도 많은 곽감독의 영화들, 혀 짧은 말투 때문에 간간히 우스꽝스런 비아냥도 듣는 권상우, 거식증 환자로 비춰질 정도로 극도의 마른 체형과 영화속 이미지때문인지 몰라도 늘 자기 세상에 갇혀 사는 것처럼 보이는 정려원의 조합은 화학적 작용면에서는 제법 잘 어울린다고 보았다.


이 영화가 재벌2세와 캔디의 일화라거나, 혹은 야심만만한 도시남녀의 연애스토리라고 하면 잘 매치가 안되는 캐스팅이다. 실생활에서 그들이 갖고 있던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들이 이 영화속에서는 그대로 캐릭터라이즈드 했다. 영화속 대사에서도 그런 말이 나온다. 혀를 길게 뽑으며 “내 혀 안짧아”라는 권상우와, 그와 관계를 갖고는 자기 몸이 그렇게 마르지 않았다 라며 쑥스러워 하는 정려원의 고해성사는 한결 감정이입을 하게 했다.


그러나 그것뿐이 아니었다. 극심한 외부충격에도 통증을 느낄 수 없는 남자와 작은 상처에도 피가 멈추지 않는 혈우병 환자 여자의 만남은 어찌보면 역설적이면서도 상당히 은유적이다. 예를 들어 출신지역때문에, 종교차이로, 궁합이 안좋다는 이유로 짝을 이루지 못하는 수많은 커플들에게 이들의 문제는 어찌보면 극복하기 정말 어려울 수도 있다.


이들은 애시당초 짝이 될 수 없는 사이처럼 보였다. 연인관계라기 보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에 갇혀 성인임에도 늘 툭 치면 부숴질 것처럼 연약하고 위태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간신히 서로에게 기대선 그들의 미래는 마치 백지장을 맞들고 있는 가녀린 초식동물처럼 보였다.


힘의 논리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이들이 생존하는 방법은 많아 보이지 않는다. 매를 벌고 새벽 길거리에서 비즈공예품을 파는 그들, 세상은 그들을 이용해 먹으려고만 하고 세파에 맞서려는 그들은 맞잡고 있는 백지장에 물을 쏟는 셈이었다.


영화는 슬프게 끝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 대신 삶이라는 것은 늘 화려하고 우아하지 않음을, 사랑한다고 애교가 남발되지도 않고 잘 표현하지도 못하지만 가슴이 울리는 통증은 분명히 있다. 그게 사랑의 감정이라면 지금 곁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전해보기 바란다. 사랑의 통증, 아프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