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도가니 - 잿빛 안개 도시의 비가(悲歌)

효준선생 2011. 9. 8. 01:54

 

 

 

 

영화 도가니는 동명의 공지영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그녀의 소설은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미 소설을 읽은 독자들에게는 그 필치에서 뿜어져 나왔던 독하고 센 이야기를 영상으로 어떻게 구현가능할지 궁금해질 듯 싶다.


그 이유는 내용 자체가 아름다운 인생스토리가 아닌 사회의 어두운 면을 신랄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글은 읽는 사람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이하지만 영상은 보다 구체적이고 충격으로 수용되기에 영화 도가니를 보기 전 상당히 다운되어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사람이 죽고 죽이는 수많은 액션, 호러, 스릴러물을 보면서도 덤덤하게 심지어는 심드렁하게 썩소를 날려주는 여유란 것은 그게 다 가짜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설사 어느 정도 진짜라고 강변을 해도 “알았어, 그래서 뭐?”라고 되받아 칠 수 있지만 영화 도가니는 그렇지 않았다.


사건이 발생하고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뉘고 소위 권력의 힘이라는 법정을 거쳤지만 결국 남은 것은 도로 그 자리일 뿐이다. 가해자는 다시 세상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피해자는 숨죽이며 사는 것, 그게 우리가 늘 부르짖는 “공정한 세상”이라는 화두하에서 자행되는 일상이다.


늘 그런 생각을 한다. 우리나라가 결코 공정한 세상이 못되는 이유가 이미 가진 자들이 그렇지 못한 자들을 억압하는 수단을 가진 자 들이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운이 좋아 돈, 권력의 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면 이미 가진 자들은 새로 가진 자로 진입하려는 자들을 혹독하게 테스트한다. 그러니 신규로 가진 자가 된 자는 더욱 매섭게 가지지 못한 자를 들볶을 수밖에 없다.      


가진 자들은 무엇을 가졌을까 돈, 명예, 권력? 물론 이런 것을 다 가지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들끼리의 커넥션이 가장 큰 힘을 발휘한다. 만약 당신이 이 나라에서 살면서 항상 무엇인가 궁핍하고 누구에겐가 빼앗기는 것처럼 산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들이 가진 힘에 맞서지 않는 게 정신건강에 좋다.


자, 일반인들은 힘의 논리와 가급적 맞부딪치지 않으면 되지만 그럴 선택권 마저 없는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영화 도가니의 피해자로 나오는 시설에 수용된 아이들이 바로 그렇다. 조실부모 하거나 양육권을 행사할 처지가 못되는 부모들, 그들의 자식들은 세상 그 누구도 모르는 공간에 갇혀 마치 동물처럼 사육당하고 있다. 교육이라는 인두겁을 쓴 야수들은 호시탐탐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해 견고한 커넥션을 만들어 놓고 아주 쉽게 빠져나간다. 그 안에 갇힌 이 아이들에게 손을 내밀어 줄 만한 사람을 찾기란 버겁다.


실존하지 않는 무진이라는 도시에 있는 자애학교에 미술선생이 부임한다. 그 역시 물경 5천만원이라는 학교발전기금을 내고 선생자리를 하나 얻지만 그 보다 큰 문제를 발견하고는 시름에 빠진다. 그 학교같지도 않은 시설안의 아이들, 대개 말을 못하거나 듣지 못한다. 그러나 상처가 큰 그 아이들을 놓고 어른들이 저지르는 만행에 선생은 분노하지만 과연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영화는 미술선생, 그리고 그 지역인권센터의 간사를 중심으로 마치 덫에 빠진 아이 셋을 구하려는 분투기를 그리고 있다. 그 과정이 지나치게 과장되거나 영웅시되지 않고 물흐르는 것처럼 진중하게 끌고 나가는 게 이 영화의 장점이다. 선악의 구도가 분명하면서도 액션 히어로가 나쁜 놈을 다 물리치는 그런 허황한 카타르시스는 없다.


힘없는 기성세대의 눈으로, 또 자신의 몸뚱아리 하나 지킬 수 없는 어린 학생들의 눈으로 영화는 끝까지 밀고 나간다. 중간에 법정씬이 있는데 잠시 환호를 지를 만한 장면이 나오지만 밋밋한 구도를 깨려는 각성제 정도로 만족한다.


간사인 그녀가 전한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기는 어렵다. 아니 불가능하다. 세상이 우리를 바꾸려는 것을 막는 게 옳은 일이다.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인간이 인간을 농간할 수 있음을 알게 된 이상, 그게 정치인이든, 권력기관이든, 종교인이든 결코 그 맛을 잊지 못한다. 마치 초식동물이 고기맛을 보고는 잡식동물이 된 것처럼, 인간은 그래서 잡식동물이 된 것이다.


예전 작품보다 훨씬 무거워진 이미지의 공유와 정유미의 들뜨지 않은 연기력과 수난을 대리로 경험한 세 명의 아역배우들에게 찬사를 보내고 싶다. 올해 최고 악질의 캐릭터로 손꼽을 만한 교장과 행정실장은 성우 장광이 1인2역을 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