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언노운 - 남자의 정체보다 중요한 민생

효준선생 2011. 2. 18. 00:26

 

 

 

새천년이 오기 직전인 99년 한국에선 이른바 IMF시대를 극복하려고 애를 쓰던 때다. 서점엔 다가오는 새천년을 조망하는 수많은 미래학 서적들이 등장했다. 그중에 몇 권을 뽑아 읽으면 마치 짜고 쓴 듯 공통점으로 등장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먹거리, 그중에서도 곡물의 무기화를 손꼽았다. 대표적인 기업으로 카길을 내세웠는데 그들의 목적은 간단했다. 전세계 곡류를 제어하는 방법으로 석유자본 이상의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당시엔 흔해 보이는 곡류가 무슨 무기가 될까 싶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 세계 각국은 바로 이 곡류의 점유에 사활을 걸고 있는 모습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있다.


가장 손쉽고 가장 대량으로 수확이 가능한 것은 옥수수다. 심어만 놓으면 쑥쑥 자라고 수확량도 다른 곡식보다 우월하며 먹지 않는 나라가 없을 정도로 범용적인 농산물이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인간에게 먹거리로 제공되던 옥수수가 소와 돼지 밥이 되고 더 나아가 이제는 연료를 만드는 재료로 활용되면서 옥수수의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거기에 이 손쉽게 재배가능한 옥수수의 쿼터가 특정인에게 제한되다 보니 더 이상 옥수수는 기근을 면케 해줄 인류의 먹거리로서의 지위를 잃고 있다. 영화 언노운에는 바로 이런 경제정치학적 논리에 처한 오늘날 식량의 무기화를 경고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 영화의 초반은 사고로 기억을 일부분 잃은 남자와 그의 신분을 인정하지 못하는 주변인과의 관계를 조명하고 있다. 단순한 심리 스릴러물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렇기에 뭔가 심상치 않은 계략이 있지 않을까 주인공의 자아찾기에 동조하며 그를 응원하던 중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저렇게 한 사람을 완벽하게 속이며 바보로 만들 수 있는 것일까 지나가는 사람들도 다 의심스러워 보였고 심지어 주인공이 혹시 정신병자였나, 혹은 꿈이었나 하는 실망스런 추측마저 가능하게 만들었다.


영화 언노운은 발칙하게도 마지막 반전과 결말에 대해 함구령이 내렸다고 표기했다. 물론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숨겨줘야 할 책임이 관객에게 있어 보였다. 아이디어는 인정해주어야 하겠지만 액션이 과감하게 끼어든 뒷부분에서는 결국 인간의 탐욕이 불러온 막되어 먹은 모략에 한숨이 나올 지경이었다.


누군가는 인류의 먹거리를 위해 연구를 하고 그 연구에 쓰라고 과감하게 경제적 지원을 하고 또 누군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그들을 해치려고 킬러에 준하는 요원을 파견하는 세상, 가진 자들의 탐욕은 선의의 과학자에게까지 칼을 겨누는 오늘.


주인공이 이들과 어떤 관계인지를 밝히는 것이 바로 이 영화의 숨겨놓은 반전이자 백미다. 굳이 밝힐 필요도 없지만 한편으로 주인공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진짜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그리고 당신의 조력자는 왜 그렇게 예쁜 건지, 명줄 짧아 보이는 당신에게 내려준 복이라고 치기엔 둘 다 안쓰러워 보이는 운명이다.


한 남자의 좌충우돌 자아찾기 소동이 영화의 80%를 차지했지만 모든게 끝나고 나니 세상은 더 이상 그를 기억할 필요도 없어 보인다. 그보다 내가 먹은 오늘 한끼 식사 속에 들어 있는 그 엄청난 비밀을 알게 된다면 쌀 한숟가락의 경제는 이미 인류에게 닥친 심각한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