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더 콘서트 - 볼쇼이 버전의 차이코프스키 바이러스

효준선생 2010. 11. 20. 03:17

 

 

 

 

 

 

 

1878년 러시아의 천재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결혼생활의 실패로 인해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요양차 간 스위스 클라렌스에서 그는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작곡했다.


그리고 100년이 지난 1980년, 볼쇼이 음악단의 천재 지휘자 안드레이 필리포프는 당시 광풍처럼 불던 인종차별정책의 일환으로 유대인 단원을 숙청하는데 동의하지 않은채 그의 마지막 공연을 강행한다. 그러나 그는 그 공연을 마치지 못했고 단원들은 뿔뿔이 흩어져 음악과 담을 쌓고 살게 된다.


30년을 음악단의 청소일을 하던 그는 우연히 사무실로 날아온 팩스 한 장에 희열을 느끼며 인생 마지막 도박을 감행한다. 그것은 파리에서의 공연이었다. 그는 수소문끝에 예전의 동지를 규합하기 시작한다.


영화 더 콘서트는 제목에서 드러나듯 음악영화다. 하지만 단순히 음악을 연주하는데 그치지 않고 강성했던 소비에트인민공화국의 마지막을 끄집어내서 오늘날을 사는 우리들에게 아픈 상처를 헤집어 놓는 드라마였다. 영화속에서 자주 언급되는 브레즈네프는 고르바초프가 소련의 해체를 강행하기 직전 불꽃같았던 냉전의 끝자락을 잡았던 소련의 통치자였다. 한국의 박정희, 중공의 등소평, 그리고 미국의 카터시절을 보냈던 사람이라면 그의 이름을 기억할 것이다.


국운이 터질 것 같이 부풀어 오르고 그게 위기라고 생각이 들면 통치자들은 이민족에 대한 강압적 조치를 꺼내들고는 했다. 소련에서의 유대인의 위치가 그러했다. 제 아무리 천재적인 실력의 바이올린 연주라고 해도 그들의 운명은 차가운 시베리아 벌판으로의 추방뿐이었다. 그들을 수하에 두고 있던 안드레이는 결코 그들을 내칠 수 없었고 불가항력 끝에 그들의 단 하나뿐인 혈육에게 마음의 빚이 남아 있었다.


영화는 러시아 모스크바를 떠나 프랑스 파리로 떠난다. 오합지졸 이미 오랫동안 악기에서 손을 놓은 연주자들은 그야말로 생계를 위해 막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심지어 매니저는 이미 한물간 코뮨의 이념을 프랑스에서 다시 불붙이려고 까지 시도한다. 루불을 벌어가는 것이 이번 방불의 목적처럼 보여졌다. 슬프지만 그건 현실이었다.


하지만 안드레이의 진심이 통하게 되면서 그들 내면에 잠재해 있던 실력은 순간적으로 발현되었다. 50여명의 짝퉁 볼쇼이 음악단의 단원들은 그들이 30년전 빚으로 감추고 살았던 동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그들 부부의 혈육앞에서 최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안네 마리 자켓은 프랑스 인기 바이올리니스트다. 막연히 볼쇼이와의 협연에 들떠 있지만 안드레이는 그녀에게 할말이 있는 듯 싶었다. 마지막 연주는 간신히 성사된다. 그리고 정말 멋지게 소화해냈다. 그게 비록 수차례 연습과 카메라 워킹임을 알 수 있었음에도 역시 멋졌다. 연주자 마음속에 그동안 꾹 누르고 살았던 비밀이 한꺼풀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차이코프스키의 협주곡은 당대에서는 너무 어려워 연주불능이라는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어찌 그러지 않겠는가. 우울증으로 시달리던 천재 음악가의 난산후 얻은 결과물인데. 그리고 이제 130년 뒤 한 시대의 아픔과 개인사가 오롯이 녹아 프랑스 파리의 무대위에서 멋지게, 그리하여 영화를 보는 관객에게도 마치 콘서트장에 와있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키게 했다.


격정적인 러시아어와 흐물거리는 불어의 묘한 혼재, 한국에서도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와 유사한 스토리는 재미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진짜 음악인처럼 훌륭한 지휘와 연주를 해낸 두 배우(알렉세이 구스코프, 멜라니 로랑)의 열연에도 큰 박수를 쳐주고 싶다. 가족과 연인과 함께 볼 수 있는 좋은 영화 한 편을 소화시켰더니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