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이끼 - 누가 나의 왕국에 침을 뱉으려는가

효준선생 2010. 7. 9. 01:43

 

 

 

 

 

 

  

영화 이끼가 만화의 원작이라서 그 원작 스토리에 충실해야 했네 말아야 했네로 뜨거운 화두가 되는 모양이다. 심지어는 원작을 망친 영화라는 평까지 나오지만 무슨 이유로 만화 원작의 영화는 주홍글씨를 달고 태어나야 하는지 모르겠다.


만화를 보지 않아도 뻔한 스토리의 전개, 결말도 반전도 어느 정도 눈치챌 수 있는 정황, 거기에 순진한 관객의 추측이 거의 이탈없이 맞아떨어지는 수준이라면 이 영화는 원소스 멀티유즈라는 신식용어를 가져다 붙이지 않아도 별거없는 그런 류의 영화라고 할 수 있겠다.


영화 이끼의 도입부는 많이 낯설다. 사람의 마음을 무겁게 가라앉게 만드는 세트의 영향도 컸지만 그곳을 채우는 인물들도 마치 연극배우처럼 하고 나와서다. 이 영화 도대체 무슨 장르일까 싶은 게, 시대를 가로지르며 내러티브를 하는 투가 기존의 영화 문법과 다른 생경한 무엇인가가 있나 싶었다. 20분이나 지나서야 영화 타이틀이 힘없이 떠오르고 그때쯤이면 이 영화의 결말은 이미 관객들의 머릿속을 장악하게 된다.


그만큼 고답적인데도 배우들이 보여주는 캐릭터는 나쁘지 않았다. 마치 일본 공연극 노(能)의 주인공만큼이나 두꺼운 분장과 어색한 가발을 쓰고는 풀어 놓는 그들의 이야기는 들어볼 만했다. 하지만 다 듣고 보니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고 또 각기 순서를 정해놓고 마치 살인 호러물처럼 죽어간다는 설정은 도식적이었다. "절대 이 영화 공포물이 아니예요" 라고 너무나 자주 친절을 베푸는 모습에 보다가 풀이 죽고 말았다. 


이미 영화 앞부분에서 그들은 자신들의 원죄를 알려주었고 그들은 가해자이면서도 피해자인 듯 행동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천용덕(정재영 분)이라는 전직 형사의 힘에서 나왔다. 이 영화에서 가장 핵심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만의 왕국을 꾸려놓고 적재 적소에 필요한 사람들을 가져다 놓는다는 것. 구색을 맞추기 위해 종교인도 하나 쓰고... 70대 늙은 이장으로 묘사되지만 그에게서 한 나라의 왕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과장스럽게, 한편으로는 억지스럽게도 보였지만 그게 아니고서는 이 영화를 끌고 나가는 동력은 없어 보였다. 그건 약간의 트릭처럼 느껴졌는데 그 이유인즉 또 하나의 이야기 축인 박해일의 내러티브에 분명 한계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나타난 그의 행동에 당위성을 갖기 어려웠고 그가 움직일수록 이미 결론이 나와 있는 영화는 알쏭달쏭한 퀴즈처럼 변해갔기 때문이다. 그의 등장은 감독이 만들어 놓은 마지막 단 하나의 반전을 위해 설정한 것이지만 미약하기 짝이 없었다.


영화는 뒤로 갈수록 힘을 잃는다. 범인이 누구라는 것, 그리고 대강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것은 두꺼운 분장의 힘으로도 가릴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다. 용의자를 가운데 두고 형사와 검사, 그리고 열쇠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끊임없이 나 자신을 다독거리며 새로운 한방을 기대했건만 똑같은 표정연기만 보여준 그녀가 둘러 서있는 모습에선 “이제 그만하지”라는 생각에 미치게 했다. 


영화는 범죄의 동기도 알려주지 않고, 시원스런 해답도 없이 대충 뭉그적거리며 끝을 내고 말았다. 반전을 하나 넣고 싶어서 보여주는 마지막 그녀의 얼굴 표정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이냐. 최종 승리를 위해 박수를 쳐야 하나


무소불위 권력의 가공할 음모, 과거를 잊고 싶었던 여자의 복수심이 커다란 두 줄기처럼 보이지만 그것보다는 그걸 말하기 위해 장치해 놓은 이런 저런 부수적인 것들에 조금 호기심을 갖고 보다가 너무나 긴 러닝타임에, 그리고 너무나 상투적인 이야기 전개에 진이 다빠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