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 - 동족상잔과 제국주의 냄새가 폴폴

효준선생 2010. 4. 27. 00:00

 

 

 

 

 

 

 

영화 드래곤 길들이기는 일단 두가지 측면에서 주목을 받는 모양이다. 하나는 3D라는 기술적 측면에서 또하나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도 주인공은 당연히 멀쩡하게 살아남는다라는 공식을 깨버린 최초의 어린이 대상 만화영화가 아닐까 싶다.


전자에 대해서는 3D 영화가 아니면 명함도 내밀지 못하는 블록버스터 만화영화에 대한 콩볶음과도 같은 관심 때문에 “얘도 그런거야?” 하고 넘기겠지만 예상밖 결말에 대해서는 조금 더 할말이 생길 것 같다.


영화의 초반은 용과 바이킹과의 접전을 보여주며 악의 상징인 용은 무조건 없애야할 대상으로 그려넣고 있으며, 이건 미래 세대라 할 수 있는 바이킹족의 아이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주입된다. 아이들은 아예 시뮬레이션 된 훈련용 용들을 무찌르는 훈련에 매일 매일 매진하고 있으며 그들을 훈육하는 선생도 용에 의해 사지일부가 절단된, 그래서 용에 대해 악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 설정된다.


결국 영화는 “악의 축” 용들과 인간 바이킹의 노골적인 대결구도를 보여주나 싶지만 용들중에서 나쁘기만 한 용은 아니고 좋은 용도 있을 수 있다는 선별적 구제방식을 제시한다. 그건 족장의 아들인 히컵을 통해 제기된다. 우연히 그가 잡은(?) 어린 용(투스리스-왜 이빨없는이 그의 이름이 되었을까?)은 그와의 교감을 통해 아무리 인간에 의해 나쁘게 정의된 용도 인간과의 인간미적인 교감을 통한다면 어울려 살 수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교감이라고 말했지만 그건 인간에 의해 길들여져야 하고 자기 몸에 여러 가지 제어장치를 달아야 한다는 조건하에...


히컵은 용을 자유자재로 부리기 위해 마치 승마 기수와 같은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야생의 동물이 애완동물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그다지 탐탁치는 않았다. 어디선가 본 듯 한 클리세, 라이더가 착용하는 고무장갑의 질감을 가지고 있는 검은 색의 용은 일본영화에 자주 나오는 뚱보 고양이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사실 이 캐릭터는 동그란 눈을 굴리는 장면을 빼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더 우스꽝스러운 장면은 후반부 용의 수괴를 치기 위한 인간의 도전에서 보여진다. 여기에는 그동안 훈련용 용으로 등장한 각종 용들이 인간의 용병으로 등장하며 우두머리격인 거대한 용은 결국 같은 용에 의해 쓰러지고 만다.


여기까지는 그동안 수많은 아동용 만화영화에서 수없이 본 권선징악의 결말이라서 김빠지는 결론이겠지만 놀라운 장면은 그 다음에 벌어진다.


히컵과 용이 교감을 나눌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용의 다친 날개를 고쳐 하늘을 날 수 있도록 도와준데 기인한다. 그런데 그 과정이 거기서 끝나지 않았고 그래서 이 영화가 독특한 결말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영화에는 인간과 동물(용)과의 대결구도를 그리지만 조금 깊게 들어가자면 미국과 악의 축간의 대결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미국영화에 그들의 주관이 개입된 영화라면, 그런데 그 중에는 미국의 말을 잘 듣는 국가는 선처를 입을 것이고, 그렇게 회유 당한 국가와 함께 “최악의 축”을 쓰러뜨리자는 의도로 보여 사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았다.


바이킹은 오늘날 노르웨이 사람들의 조상격이지만 그들이 동양의 신비주의에서 발현된 용을 물리치거나 혹은 그들의 도움을 받아서 같은 용을 무찔러야 한다는 것은 일단 스크린에 보여지는 비주얼이 좋고 시대를 왕창 끌어 올리는 역할을 해줄 뿐이다.


우리가 3D영화의 화려한 영상에 현혹되어 갈수록 그 이면에 내포하고 있는 메시지에는 상대적으로 둔감해질 수 있음을 보여준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