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예언자 - 루저청년 말리크에게 감옥은 오히려 배움의 장이 되었다

효준선생 2010. 3. 2. 00:36

 

 

 

 

 

 

 

영화 예언자는 150여분 동안 주인공 말리크의 시선을 따라간다. 일체의 간섭이 없을리 없지만 카메라는 아예 말리크에게 맡겨둔 것처럼 작동한다.


영화의 시작은 프랑스의 한 감옥안, 19살의 그는 소년원이 아닌 제대로 된 감옥에 갇히게 된다. 6년 형을 언도 받았고 경찰을 두들겨 팼으며 대마초에 거부감이 없다.  

이 청년이 프랑스 본토박이 백인이 아닌 아랍계 청년이라는 것은 영화 내내 그의 발목을, 관객에게는 풀기 어려운 일종의 선입견을 던져준 문제의식이 된다. 프랑스인이지만 주류가 아닌 코르시카 출신들 역시 상대적으로 심리적인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 역시 아랍계 이민족에 대해서 또 하나의 차별을 하고 있었다. 영화 초반 말리크는 엄청나게 화를 내는 장면이 나온다. 같은 수감자가 그를 향해 돼지라고 욕을 했던 것이다. 뚱뚱한 편이 아닌 그에게 돼지라고 욕을 한 것은 그가 이슬람 교도임을 알고 그 안에서 가장 모욕적인 언사를 가한 것이다. 아랍인들이나 이슬람 교도들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으며 가장 천한 동물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은 또하나의 사회다. 사회와 격리되어 있고 그들이 형기를 마쳐야 하는 곳이라고 나와 관련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그안에서는 일반 사회와 비교할 수 없는 계급질서와 폭력이 존재하는 곳이다.

한국의 성인 남자들에게 군대가 그런 의미를 어느정도 주는 것과 비견될 수 있을까   며칠전 이런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다. 자신의 어린 아들이 범죄를 저지르고 감옥에 가게 되었는데 함께 방을 쓰는 수감자가 강간범이라고...기사를 계속 읽어보니 그 아들이라는 청소년의 범죄항목은 성추행이란다.

그러니 성추행범이 감옥에 가서 더 나쁜 물을 들여 나올 게 아니냐는게 그 부모의 주장이었다. 감옥을 소재로 다룬 영화를 보면 최근에는 유난히 훈훈한 인정에 호소하는 영화가 많았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80년대 홍콩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것처럼 잔인한 보복과 이를 비호하는 일부 간수들이 영화소재로는 더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싶다.


다시 말리크 이야기를 해보자 감옥에 들어간 그를 주목한 인물은 간수들과 결탁되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털 루치아니였다. 그는 코르시카방을 형성해 간수들을 자신의 편으로 심어 놓고 자신에게 걸리적 거리는 숙적들을 제거했다. 그런데 본인은 피한방을 묻히지 않고 대리인을 만드는데 이번에 걸려든 것이 바로 어리숙하고 문맹에 가까운 말리크였다. 그는 첫 번째 범행을 무사히 마치고 루치아노의 신임을 얻는다. 그렇게 루치아노의 후견을 받아가며 비교적 편안한 감옥생활을 하던 그는 루치아니의 심복들이 다른 곳으로 이감되거나 가석방되면서 2인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다.

비교적 형기가 짧았던 말리크는 루치아노의 주선으로 모범수의 특전을 받고 수시로 외출을 나가며 루치아노가 주는 미션을 수행한다.

한편 프랑스어를 잘 모르는 그는 감옥안에서 공부를 해가며 조금씩 자아에 대해 눈을 뜬다. 나중에는 루치아니의 반대편에 서있던 인물의 일도 해주며 점점 그 세계에서 자신의 입지를 만들어 간다.

 

 

 

 

영화 예언자는 이민족 출신의 젊은이가 주어진 환경에 적극적으로 적응하며 성장하는 좀 거칠고 격렬한 성장무비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총격전이나 카체이싱등이 질펀한 액션 블록버스터도 아니다. 그러면서도 150여분을 채울 수 있었던 것은 완전히

말리크 역을 맡은 배우(타하 라힘)와 안소니 홉킨스와 비슷한 공력을 보여준 루치아니(닐스 아르스트럽)의 공이 크다.

그들은 자신의 힘만으로 영화를 끌어가기로 결심한 듯 엄청난 파워를 보여준다. 비록 눈에 들어나는 완력이 아니라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고 그들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수시로 방점을 찍어나가는데 있었다.

예언자는 점쟁이라는 뜻이 아니었다. 자신의 보잘것 없는 신세에 주저 앉는 대신 적극적으로 운명을 개척해 나가는 말리크 본인이 스스로에게 붙인 이름이었다.

감옥이라는 최악의 삶의 환경이지만 그건 길게 보면 그의 운명에 전화위복으로 작용하였다. 실감나는 감옥에서의 죄수들의 삶, 수만가지 사연들이 존재하고 스스로를 루저라고 자책하며 거쳐간 여느 수감자와는 다른 감옥을 인생을 배우는 학교라고 생각한 말리크, 그의 장대한 인생 서사시가 펼쳐진 영화 예언자, 배우의 필모그래프는 일천하지만 앞으로 그의 이름을 자주 대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말리크는 포스터처럼 유난히 창밖을 바라보는 장면이 인상적으로 많았다. 그건 철창밖, 유리창밖 세상에 대한 동경일수도, 혹은 자신을 혹독하게 단련시켜 저 세상과 겨뤄보고 싶은 한 청년의 도전의식일 수도 있다.

세상을 보는 창을 가지고 있는 그가 바라보는 곳은 어디쯤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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