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기억에 새겨져 있는 충격적인 체험이 성인이 된 뒤에도 뇌리에 남아 정상적인 심리활동을 저해하는 일련의 공황장애를 트라우마라고 한다. 그것은 엄중한 교통사고나 살인장면, 혹은 자연재해, 그리고 가족과 관련된 충격적인 장면들이 그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정부분 크고 작은 트라우마를 가지지 않는 사람은 없을 텐데 인간 본성에 감춰진 트라우마는 영화의 소재로 다양한 측면에서 활용되어 왔다.
청년에게 트라우마는 자신의 여자친구를 빼앗아간 아버지에 대한 강렬한 반항이다. 하지만 그는 무력을 사용하지 않는다. 장문의 편지를 써서 그에게 보내는 것으로 대신한다. 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던 트라우마는 매우 변형적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영화가 내보이는 변형의 시퀀스들은 인간이기에 세뇌되어 그것이 바로 윤리라고 배워왔던 많은 도덕적 가치관을 무시해 버린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해야지 남자를 사랑해서는 안되면 마약은 아주 나쁜 것이며 며느리를 뺏는 시아버지는 있어서는 안되며 아들과 어머니는 결코 성관계를 맺어서는 안된다는...
하지만 영화 세비지 그레이스는 이 모든것을 가능할 수도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눈을 감고 고개를 돌릴 수 있는 장면이지만 그것을 무마하기 위해 몇몇 평론가들은 "보라 여주인공의 연기가 얼마나 절정에 도달했는지를..."라고 후한 평점을 내리고 있다. 혼자서 보았다면 그런 여흥도 즐길 수 있으련만...
감독인 톰 칼린은 허위와 위선으로 가득찬 상류층 고관대작의 일탈행위에 비수를 꽂으려고 했는지는 몰라도 그 이면에 잠겨있는 내용인즉, 부모의 비뚤어진 사랑과 그로인해 정상적인 인성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한 청년의 왜곡된 말로를 그리고 있을 뿐이었다.
청년 토니는 부유한 집안에 외동아들로 태어나 가족의 관심을 받고 성장한다. 그런데 토니가 갓 성인이 될 무렵 여행지에서 만난 스페인 아가씨와 잘 지내려고 한던 찰나 갑자기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도망을 친다. 공항에 가서 악다구니를 퍼붓는 엄마, 그 이후 그녀의 정신세계는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아들이 마약을 하건, 동성애를 하건 그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별로 심각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아들과 엄마의 관계, 그리고 살인, 그리고 그 현장에서 중국집에 전화를 걸어 시킨 태연하게 중국음식을 먹고 있는 토니...
반두비에서 민서가 맨마지막에 이슬람 음식을 마구마구 먹는 장면이 연상되었다.
결정적인 장면이 이어질때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던 극장안의 분위기가 이 영화가 얼마나 센세이셔널 했는지를 말해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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