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충만 리뷰/[영화평Ⅰ]요즘 영화리뷰

영화 호우시절 - 사랑한다면 지금 해라, 비는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효준선생 2009. 10. 1. 00:12

 

 

 

 

 

 

 

사랑에 신중했던 사람이 있다. 아니 사랑을 의심했던 사람이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가 싶어 더 이상 다가서지 못하고 주저하는 사이 그 사랑은 내가 아닌 다른 사랑을 하게 되었다.


영화 호우시대의 테마이자 낭만 자객 허진호 감독의 일련의 작품을 꿰뚫는 화두다. 왜 그의 작품속의 사랑은 이루어질 듯 말 듯 안타깝기만 할까


우리는 흔히 착각을 한다. 내 사랑은 이리도 힘들고 아프기만 한데 다른 사람의 사랑은 쉬워 보이는 것일까라고... 과연 다른 사람의 사랑은 쉬운 것일까


우연히 중국 성도, 대나무가 멋지게 흔들리는 두보의 초당에서 다시 만나 옛 연인, 그들은 비가 내려 어느 가게 처마밑에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지나간 사랑의 아쉬움을 토로한다.

시인이 될 것 같았던 남자, 먹고 살기 위해 회사에 들어갔고 이번 월급만 받으면 그돈으로 글을 써야지 하다가 보면 다음 월급이 들어와 다시 발목을 잡히고,

남자가 다른 여자를 만나나 보다라고 생각한 여자, 그래서 다 하지 못한 말 사랑한다는 그말 이제야 꺼내보지만 여자에게 다시 찾아온 사랑은 버겁기만 하다.


성도는 아무 의미 없이 대충 골라낸 로케이션이 아니다. 촬영을 하기 1년전 엄청난 지진으로 인해 수많은 인명이 희생당했으며 남자는 그곳의 현장을 둘러보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은 나중에 등장할 영화의 중요한 복선이 된다.


이 영화가 웰메이드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좀처럼 서둘지 않는 그래서 엄청 꼼꼼하게 박음질 된 편집과 드라마적 구성요소에 있다. 감독이 몇십년 정도 중국 현지에서 유학생이나 주재원으로 있었던 것처럼 섬세하고 현실적이다.

허감독의 영화에서 늘 그렇듯 드라마적 요소가 전면에 부각되고 대사역시 맛깔스럽다. 영어로 소통하는 탓에 어려움도 있으련만 어차피 저런 상황에 모국어를 쓸 수 없다면, 다시 말해 속 깊은 말을 다하지 못한다는 설정이라면 제3의 외국어를 쓰는 것은 장점많은 장치가 된다. 물론 두 배우의 영어 실력은 우수했다. 고원원의 중국어 역시 북경어이기에(영화에서는 사천미인이라고 했지만) 오랜만에 듣는 중국어 푸근했고... 

또 하나의 장점을 들자면 마치 빛을 배우처럼 자유자재로 활용을 했던 것으로 눈이 밝아지는 느낌을 주었다. 푸르른 대나무의 숲. 그리고 사이사이의 햇빛, 골목길에서 연한 초코렛처럼 감싸는 부드러운 역광, 그리고 무미건조한 성도의 거리로 쏟아지는 회색의 자연광등...이 때문에 여백의 미를 최대한 강조하는 동양화를 몇폭은 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영화에 나오는 자전거는 또하나의 재미있는 의미가 된다.  메이가 자전거를 타지 못해 남자(동하)가 유학시절 가르쳐 주었다고 하는데 여자는 자기가 자전거를 가장 못타는 사람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주인공으로 나온 고원원이 명성을 얻기 시작한 작품이 바로 북경 자전거라고 한다면 이 또한 우연한 설정은 아닌 듯 싶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치 내 이야기인 것 같아 옳지 옳지 하면서도 마음 한 켠이 찡해 왔다. 나역시 비슷한 추억을 놓고 왔으며 그때 망설였던 이유로 지금도 그 추억을 쉽게 잊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여자가 가진 아픔도 어쩌면 남자와의 사이에서의 망설임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가 알겠는가 그 선택이 또 어떤 아픈 상처로 현실화 될지...


이 가을이 점점 깊어져 간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지금하라 당장, 이 영화는 이걸 말하기 위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했다. 좋은 사랑 많이 하도록.


참고로 정우성과 고원원처럼 선남선녀가 마치 구름을 헤치며 다니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런 상대면 국적불문, 트라이 해보겠다는 환상을 하기 싶겠지만 중국 여성은, 한국 남자가 만만하게 볼 만큼 나긋나긋하지 않다. 이점은 명심해야 한다.